프롤로그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새, 파리, 나비, 애벌레, 유충, 개미, 지렁이, 고라니, 들개, 두더지, 다람쥐, 멧돼지, 개구리, 물고기와 같이 수없이도 많은 종류의 곤충과 동물의 고통을 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잡초, 들풀, 꽃, 버섯, 이끼, 갈대, 넝쿨, 나무와 같이 수없이도 많은 종류의 식물의 고통도 복제할 수 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때 나는 두개골이 열리고, 뼈가 으깨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호흡이 멎는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손톱이 빠지고, 근육이 끊어지고, 온몸의 털이 뽑힐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장기가 끊어지고, 위액이 역류하고, 목에서는 피가, 귀에서는 진물이, 코에서는 고름이 터져 나올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능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특별한 능력은 때때로 아주 가끔, 때때로 혹은 많이, 때때로 알 수 없는 정도로 나에게 찾아온다.
나는 그런 고통은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이 특별한 능력을 없애는 방법을 찾고 있다.
1. 계단식 논에서
계단식 논의 한 가운데에 마네킹이 서 있다.
마네킹은 양 팔을 가득 벌리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마네킹은 여성의 몸을 가졌다.
굴곡진 몸의 선이 드러나는 검은색 스타킹을 뒤집어 쓴 채로.
나는 마네킹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새들이 논의 테두리 바깥으로 비껴 날아간다.
새들이 마네킹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호흡이 가빠진다.
하아하아하아하 아하아하아하하아
하아하아 하아하
하아하 아하
아하아
아
밤이 되고 풀벌레들 소리가 들린다.
마네킹이 드디어 입을 연다.
마네킹
밤이 되면 저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아.
나
태양이 소리들을 먹어 삼키니까요.
마네킹
더러운 잡식종.
나
밤이 되면 다시 토해내고요.
마네킹
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마네킹
얘, 나고는 통관에 해서아는 무것몰도 라.
나
저의 문제는 복제에 관한 것이에요.
마네킹
그럼 잘 찾아왔어.
마네킹
나는 그 주제에 전문가거든.
나
복제를 중단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마네킹
혼자서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나
당신은 어떻게 중단되었는데요?
마네킹
나는 중단된 게 아니야.
마네킹
대체된 거지.
마네킹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마네킹 공장이 가동을 멈췄거든.
나
왜요?
마네킹
이제 인간이 마네킹을 대신해서 쇼윈도에 서 있대.
나
저는 인간이지만, 다른 인간이 저를 대체해줄 수도 있을까요?
마네킹
불쌍한 꼬마야.
마네킹
너는 나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마네킹
차라리 나라면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힐 텐데.
나
그런 방법은 없어요.
나는 마네킹을 발로 찬다.
마네킹이 계단식 논 한 가운데에 무너진다.
마네킹이 뒤집어쓴 검은색 스타킹이 찢어지기 시작하고, 찢어진 스타킹 사이에서 마네킹의 눈동자가 빛난다.
나
불쌍한 마네킹 주제에.
나
이제 다시 새들이 날아올 거예요.
2. 묘지산에서
나는 묘지산을 올라가고 있다.
묘지산은 묘지들로 이루어진 산이다.
나는 하나의 묘지를 건너갈 때마다 부패되는 영혼의 냄새를 맡는다.
꼭대기에 다다를수록 냄새는 심해진다.
나는 코를 막는 대신에, 눈물을 흘린다.
흘러나오는 눈물과 콧물이 영혼의 냄새를 없앤다.
이윽고 나는 묘지산의 꼭대기에 도착한다.
묘지산의 꼭대기에는 나처럼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 있다.
나
저를 대체해줄 수 있는 인간을 찾고 있어요.
인간
잘못 찾아왔구나.
인간
나는 살아있는 건 대체해줄 수 없어.
인간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나
하지만 당신도 저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요.
인간
나의 눈물은 냄새 때문이 아니야.
나
그럼 뭔데요?
인간
영혼의 소리를 대신 내고 있는 것뿐이지.
나
모두 똑같은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인간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어.
나는 인간이 눈물을 흘리며 내는 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인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인간과 나의 눈물이 합쳐져 묘지산의 메아리가 된다.
흐
흐윽
흐으 흐윽 하아
하아 흐윽 흑 흐윽
흐으 하아 하아 흑흑 흑 흑
흐응 흑 흑흐 흐으 하아 흐윽 흑 흑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한다.
소리가 멈춘다.
인간
난 이제 내려가 봐야겠다.
인간
오늘 할 일은 다 끝났어.
나
내려가서는 뭘 하는데요?
인간
다른 인간들에게 소리를 전달해줘야지.
인간
그게 내 직업이야.
나
저에게도 전달해주시면 안 될까요?
인간이 나를 본다.
계단식 논에 무너진 마네킹과 똑같은 눈동자로.
인간
불쌍한 꼬마야.
인간
원래는 돈을 내야 하지만, 너에게는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마.
인간
너의 영혼에는 능력이 있다고 하신다.
인간
고통에 특화된 능력이 있다고 하신다.
인간
누구도 갖지 못하고 누구도 갖지 못할 특별한 능력이라고 하신다.
인간
하지만 불쌍한 꼬마야, 그 능력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하신다.
인간
아무런 힘이 없다고 하신다.
인간
그 능력을 없앨 방법 또한 없다고 하신다.
인간
그 능력을 잠깐 멈출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고 하신다.
인간
아마도 평생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
그리고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너의 작은 몸이 녹슬고, 오래되고, 결국엔 부패해서 묘지산을 가득 찬 냄새로 변하게 되더라도 영혼의 소리만은 여전할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
영원할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
그래서 나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인간들이 너의 영혼의 소리를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 너는 영원히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
끝끝내 이 세계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그 소리만은 여전히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
묘지산의 영원한 메아리로 남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나는 인간이 밟고 있는 잡초를 바라본다.
잡초 뿌리가 썩어가기 시작하고, 흙의 색이 검게 변한다.
그러자, 고통이 찾아온다.
아 하 흐윽 헉 학학 싹 악 학
힉 학 헉 호옥 아악 아 아하아 헥
각 혹 흑 흐익 힉 학
하 하 하 하 하 하 핵 헥 헥 헥 핫 핫 핫 핫 햣 햑 햑 헥 헥 헥 헥 헵 헵 헵 악 악 악 악 악
혹 헥 학 훅 호옥 하악 학
하익 아악 아 아앙 아 아이
오옥 오오익 엑 헤엑 하익 헉
후욱 하각 힉 히익 학학학학 헉
읻 악 악 악 억억 옥
하욱 욱 우우익 악 후욱
혹 학힉 힉힉힉힉힉힉 하아엑 아 아 아 아 아 아
히이익 에엑 아아악 끼잉 꺙 꺙 꺙
깡 와아악 아이익익익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우에에 웨 우웨엑 에이익 하악 혹 흑 힉
하아 하 하 하 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악
후에 헥 학 햑 횩 휵
익 익 익 익 익 익 익 익 익 엑 엑 엑 엑 엑 엑 엑 엑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읻 앋 앋 앋 앋 컥 컼 캌 캭
흐으 흐 흐 흐
칵 칵 칵 컥컥 킥킥 헥헥 헥 힉
아 아 아 악 흐 흑 흑 흑
잡초 뿌리가 썩어가기 시작하고, 흙의 색이 검게 변한다.
검은 흙은 점점 더 자라나더니 묘지산 꼭대기의 땅을 검게 물들인다.
묘지산 꼭대기의 땅은 묘지산의 뿌리를 타고 점점 더 내려간다.
묘지 하나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고, 묘지 두 개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고, 묘지 세 개가 검게 변 하기 시작하고, 묘지 네 개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고, 묘지 다섯 개가 검게 변하기 시작한다.
묘지산을 가득 차고 있는 묘지들의 땅이 검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묘지산 전체가 검게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검게 물든 땅을 바라본다.
검게 물든 땅의 검은 흙을 바라본다.
검은 흙 속 에는 검은 돌멩이가 있다.
검은 돌멩이 속에는 검은 가루가, 검은 가루 속에는 검은 알갱이가, 검은 알갱이 속에는 검은 영혼이 있다.
검은 영혼이 내 콧속으로 들어온다.
내 눈 속으로, 내 귓속으로, 내 몸의 모든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온다.
검은 영혼이 내 몸속의 피를 타고 역류하기 시작한다.
피와 영혼이 뒤섞인다.
나는 몸속에 흐르는 검은 영혼을 받아들인다.
검은 영혼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수많은 울부짖음을, 영혼들을 도살하는 풍경을, 피 냄새를, 축적된 고통의 역사를 받아들인다.
공포를 받아들인다.
검은 영혼들이 내 피를 타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내 몸을 뛰어넘는 고통이 나의 일부가 된다.
검은 영혼은 내 안에서 다시 검은 알갱이가 되고, 검은 가루가 되고, 검은 돌멩이가 되고, 검은 흙이 되고, 검은 땅이 되고, 검은 묘지산이 된다.
내 안 에서 검은 영혼의 화석이 만들어진다.
나는 살아있는 고통의 화석이 된다.
검은 영혼들은 비로소 내 안에서 몸을 갖게 된다.
나는 그들의 검은 영혼을 살아있는 고통의 화석으로 복제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나는 복제인간.
무한히 자가분열되는 고통의 고향.
몸 없는 검은 영혼들의 샤먼.
부패냄된새 였메던아 리영원굳않히지 화을 석 영혼들.기이 생 하해는 충끝없증이식 하는..
고통의 영양소.
고통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그 세계를 본다.
내가 속해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내가 속할 수밖에 없는 그 세계를.
3. 임도에서
임도를 올라가고 있는 노인이 있다.
노인의 몸은 구십 도로 꺾여 있고 노인의 등에는 커다란 수레가 붙어 있다.
나는 노인이 내려오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고, 풀벌레들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고라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과 수레가 임도를 걸어 내려온다.
나
수레에 뭐가 들어 있어요?
노인
나무 씨앗.
나
씨앗을 담는 수레 치고는 너무 큰 것 같아요.
노인
어쩔 수 없지.
나
작은 수레를 구해다 드릴까요?
노인
그럴 필요 없어.
노인
수레가 등에 붙어 버려서 떼어지지가 않거든.
나
그럼 나무를 어떻게 심어요?
노인
나무는 이 수레에서 자란단다.
나
제가 수레를 떼어낼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나는 노인의 등에서 수레를 잡아당긴다.
노인이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수레를 잡아당기고, 노인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노인이 내지르는 소리와 고라니가 우는 소리,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합쳐져 음악이 된다.
아이고오
악
씨씨씨씨씨씨
아이고오
악
푸르르르르르
악
아이고오
뚫뚫뚫뚫뚫
악
아이고오
악
파파파파파파파파파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부서진다.
수레가 아니라, 노인의 몸이 부서진다.
구십 도로 꺾여 있던 노인의 몸이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더니 다시 반대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하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이내 완전히 꺾여 접혀버리더니 그대로 부서져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가 수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수레 안을 본다.
수레 안에는 씨앗 하나와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가 자라나고 있다.
나는 둘 중 무엇이 씨앗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그냥 둘 다 자라나게 놔두기로 한다.
4. 동굴에서
나와 수레, 수레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나무 씨앗과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가 걷는다.
우리는 산비탈과 계곡, 폭포를 걷는다.
우리가 산비탈과 계곡, 폭포를 걷는 동안 수레 안에서 나무 씨앗인지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인지 모를 것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가지가 자라나고, 잎에 새순이 돋는다.
기둥이 굵어진다.
바퀴는 점점 더 망가진다.
나는 지형이 험한 길을 걸을 때면 노인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 등에 수레를 업는다.
그럴 때마다 수레 안에서 나무 자라나는 소리가 들린다.
파사 파사
파사 파사
파사
파사
파사
파사
파사
그렇게 우리는 동굴에 도착한다.
동굴은 수많은 메아리가 부딪혀서 만들어진 장소다.
작은 몸들이 녹슬고, 오래되고, 결국엔 부패해서 검은 흙이 되고 검은 흙 속의 검은 돌멩이 속의 검은 가루 속의 검은 알갱이 속의 검은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메아리가 천장과 벽 사방에 부딪혀 생겨난 장소다.
그 메아리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하늘의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고, 땅에 부딪히는 순간 굳어버린다.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의 문양을 만든다.
어떤 메아리는 가늘고 길게, 또 어떤 메아리는 굵고 동그랗게.
그것들은 그렇게 동굴이 된다.
우리는 동굴 속에서 벽과 천장에 붙어버린 메아리의 역사를 본다.
묘지산 꼭대기의 인간이 예언한 메아리의 역사를.
우리는 한참을 걷는다.
길고 오래된 메아리의 역사를 더듬으며 동굴의 출구를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그 사이 나무는 더욱 자라난다.
수레는 더욱 무거워진다.
그 사이 나는 우리가 더듬었던 메아리의 역사만큼의 고통을 복제한다.
끝없이
한없이
천천히
고통스럽게
그리고 드디어 동굴의 출구에 도착했을 때
5. 터널에서
그리고 드디어 동굴의 출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갑자기 메아리의 역사가 끝나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그것은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진동이다.
그것은 메아리의 역사가 진동하는 소리다.
동굴의 출구에서 폭탄이 터진다.
동시에 동굴 속에 굳어 있던 모든 메아리가 격렬하게 진동하며 이곳저곳으로 튕겨진다.
우리가 더듬었던 메아리의 문양들이 폭탄과 함께 터진다.
묘지산 꼭대기의 인간이 예언했던 메아리의 역사가 폭탄과 함께 터진다.
동굴의 출구가 터널의 입구로 변한다.
나무 자라나는 소리가 멈춘다.
돋아난 새순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등에 업고 있던 수레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노란색 헬멧을 쓴 인간들이 달려온다.
그들은 길고 앙상한 두 다리를 가졌다.
길고 앙상한 두 다리를 가진 노란색 헬멧을 쓴 인간 하나가 나에게 묻는다.
길고 앙상한 두 다리를 가진 노란색 헬멧을 쓴 다른 인간 하나가 나에게 말한다.
길고 앙상한 두 다리를 가진 노란색 헬멧을 쓴 다른 인간 하나가 나에게 묻는다.
길고 앙상한 두 다리를 가진 노란색 헬멧을 쓴 다른 인간 하나가 나에게 말한다.
나는 메아리의 진동 때문에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어지러움이 밀려든다.
구역질이 밀려든다.
그리고 다시 고통이 시작되려는 순간, 메아리의 진동이 고막을 타고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메아리 그걸 마셔.
그걸 마셔?
메아리 그걸 마셔.
어떤 걸?
메아리 나무의 피.
나는 폭탄으로 만들어진 터널의 입구 바닥에 놓인 수레를 바라본다.
수레 안에서 자라난 나무 씨앗인지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인지 모를 그것을.
검은 새순이 가지를 타고 나무 기둥에 검게 번지기 시작한다.
나는 곧바로 기둥을 잘라내고, 흘러나오는 나무의 검은 피를 마신다.
그러자 고통이 멈춘다.
6.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도로
콘크리트
길
표지판
자동차
콘크리트
도로
길
표지판
터널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콘크리트
벽
불빛
불빛
자동차
불빛
불빛
표지판
카메라
불빛
터널
길
도로
표지판
자동차
카메라
자동차
자동차
콘크리트
길
카메라
표지판
콘크리트
콘크리트
고라니
1.
나무는 내가 고통을 복제할 때 더 무럭무럭 자라난다.
2.
그렇게 자라난 나무는 땅이 굳고, 흙이 콘크리트로 변할 때 검게 변하기 시작한다.
3.
검게 변한 나무의 피는 나의 고통을 잠시 동안 멈추게 한다.
4.
나는 다시 나무를 자라나게 하기 위해 고통을 복제한다.
메아리의 진동이 나에게 이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선택적으로 고통을 복제하고, 선택적으로 고통을 멈추는 법을 배웠다.
메아리의 진동은 그날 이후로 내 몸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내 몸속에서 아무런 요동도,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여전히 내 몸속에 메아리의 진동이 있다는 것을.
내 몸이 메아리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메아리의 진동이 내 몸을 느끼게 한다.
나와 수레, 수레 안의 나무 씨앗인지 노인의 부서진 몸 조각 하나인지 모를 것이 자라난 나무, 내 몸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메아리는 끝없는 고속도로 위를 걷는다.
왜 끝이 없냐면, 고속도로는 우리가 걷는 길만큼 팽창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내가 걸은 한 발자국 정도 길이의 고속도로가 팽창한다.
내가 수레 한 바퀴를 굴릴 때마다 내가 굴린 수레 한 바퀴 정도 길이의 고속도로가 팽창한다.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끝없이 앞으로 뻗어나가는 선 위에 멈춰 있는 점이 된다.
그러나 우리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저 끝없는 자동차들은 다르다.
저 끝없는 자동차들은 이 끝없는 고속도로의 끝에 도착할 수 있다.
끝없는 자동차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내가 걸은 한 발자국이나 내가 굴린 수레 한 바퀴 정도 길이의 고속도로가 팽창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 끝없는 고속도로는 저 끝없는 자동차들만을 위한 길인 것이다.
고라니의 피와 메아리의 역사가 박제된 동굴, 흙 속의 잘라진 뿌리와 달팽이의 사체들, 투명한 벽에 부딪히는 새들을 위한 길이 아닌 것이다.
우리를 위한 길이 아닌 것이다.
태양은 여전히 모든 소리들을 먹어 삼킨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속도로의 불빛이 태양이 토해낸 소리들을 다시 먹어 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없이 앞으로 뻗어나가는 선에서 튀어나와, 고속도로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비로소 관측할 수 없는 점이 되기 위하여.
7. 계류장에서
우리는 굳지 않은 땅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터널의 입구가 된 동굴의 출구를 지나간 이후로, 굳지 않은 땅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무의 피를 한 번 마시고 나면 아직 콘크리트로 변하지 않은 땅을 찾아 수레의 흙을 갈아준다.
그렇게 나무는 새로운 흙에서 다시 태어나고, 나의 복제된 고통을 영양분 삼아 자라난다.
수레바퀴 한쪽은 이제 쓸 수 없게 되어서, 나는 한쪽 바퀴를 고속도로 위에 버리고 왔다.
바퀴가 한쪽밖에 남아있지 않은 수레는 자주 균형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한쪽 바퀴가 있던 자리에서 수레를 끌게 되었다.
한쪽에는 나의 몸, 다른 한쪽에는 바퀴 하나, 그리고 나와 바퀴 사이에 나무가 있다.
그리고 고통.
그리고 복제.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전부다.
고속도로의 아래에서, 우리는 아직 콘크리트로 변하지 않은 땅을 찾았다.
계류장 뒤의 땅이었다.
계류장은 죽음이 기다리는 소들이 있는 장소다.
소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죽음이 소들을 기다리는 장소다.
그러니까 결국, 계류장은 죽음이 소들의 주인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고속도로 위에서 맡았던 고라니의 피냄새보다 더욱 오래된 피냄새가 난다.
지금 도살되고 있는 소들의 지독한 피냄새가 아니라, 동굴 속의 굳어버린 메아리의 역사처럼 축 적된 기억의 피냄새다.
계류장의 소들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는 소들의 고통을 복제해서 그 냄새를 소들과 동시에 맡는다.
소들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내 몸속에 있는 메아리의 진동이 함께 요동치며 소리를 지른다.
음 마
음마아 음마아
음마아 음마아
음마 아아
음 마
아 아
아 아
아 아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 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 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 리, 피냄새총소리, 그리쇠고,창살 소들눈의 칸막이울음소, 리 피냄새총소리, 그리쇠고, 창,,, 살, 소들눈의 칸막이울음, 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 쇠고 창살,소 들눈의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쇠창살, 소들의 눈, 칸막이, 울음소리, 피냄새, 총소리, 그리고 소 한 마리가 쇠창살을 넘어 계류장 밖으로 달려 나간다.
계류장 안에 있던 소들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소들의 눈이 죽음의 시간을 벗어난 소를 쫓는다.
총소리가 잠시 멈추고, 커다란 자동차가 죽음의 시간을 앞당긴 소를 쫓아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팽창하기 시작하는 길.
나는 계류장 뒤의 흙을 수레 안에 담고, 그곳을 떠난다.
수레 안에는 축적된 기억의 피냄새가 저장된 흙이 있다.
나무는 계류장의 역사를 보존한 채 자라나기 시작한다.
8. 폐공장에서
우리 앞에는 거대한 벽이 있다.
회검정색으로 칠해진 콘크리트 벽이다.
벽은 수레 백 개를 위로 쌓아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높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서 잠시 동안 어디가 안인지, 어디가 밖인지를 고민한다.
벽은 경계다.
어디가 안인지, 어디가 밖인지 고민하는 것은 경계와 상관있는 존재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대체로 생존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콘크리트 벽 틈 사이에서 자라난 넝쿨은 그런 고민과는 상관없는 존재다.
그들은 벽을 타고 자라난다.
경계에 기생하는 동시에 경계를 침범하며 안과 밖을 넘나든다.
우리는 이어진 넝쿨을 따라가다가, 거대한 벽 아래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발견한다.
수레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다.
우리는 간신히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구멍 속에는 또 다른 벽이 있다.
사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공간이다.
넝쿨이 사 면의 벽을 따라 사선으로 자라나 있다.
넝쿨의 입장에서 본다면, 직사각형의 공간은 원형의 공간이 된다.
우리는 이어진 넝쿨을 따라 원형의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원형의 공간 안에는 절단된 손과 절단된 발, 절단된 팔과 절단된 다리, 절단된 몸통과 절단된 머리들이 쌓여있다.
머리들의 눈동자는 모두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계단식 논에 무너진 마네킹과 똑같은 눈동자로.
그중 하나의 눈동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마네킹
복제를 중단하는 법을 찾았니?
나
아직이요.
마네킹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네.
나
잠깐 멈출 수는 있게 되었어요.
마네킹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익혔구나.
나
당신은 또다시 대체되었나요?
마네킹
물론이지.
마네킹
“불쌍한 마네킹 주제에.”
마네킹
네가 나를 계단식 논 한 가운데에 넘어뜨린 이후로, 나는 다른 마네킹으로 대체되었어.
마네킹
이번에는 검은색 스타킹을 쓰고 있지도 않고, 눈동자도 가지지 않은 남자의 몸을 한 마네킹으로 말이야.
나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마네킹
괜찮아.
마네킹
사실 나도 새들이 날아오길 바랐거든.
마네킹
그리고 여기엔, 인간을 물어서 죽인 개들이 살아.
나는 수레를 돌려 폐공장의 출구로 간다.
우리가 들어왔던 출구가 아니라, 공장의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나 있는 개들의 출구다.
그 출구 앞에서 우리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다.
개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짖기 시작한다.
나는 수레를 멈추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이윽고 밤이 되고, 다시 태양이 뜨고, 다시 밤이 되고, 다시 태양이 뜨고, 다시 밤이 되고, 다시 태양이 뜨고, 다시 밤이 된다.
그리고 개들 몇 마리가 수레에게 다가온다.
나무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천천히 수레바퀴를 굴린다.
개들이 출구 밖으로 나가고, 우리가 개들의 무리를 따라 수레바퀴를 굴린다.
9. 매립지에서
개들의 무리가 도착한 곳은 매립지다.
매립지에는 개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개들이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지에 묻은 가루와 굳어버린 액체를 핥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무의 잎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곧 나무의 줄기가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나무의 뿌리가, 나무가 담고 있는 흙이 썩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고통이 없다.
그곳에는 납작해진 쓰레기 더미와 이미 굳어버린 땅, 죽은 풀들의 흔적, 파리와 쥐들, 그리고 개들의 무리뿐이다.
나는 수레에서 자라나는 나무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의 고통이 나에게로 찾아온다.
내 몸속에서 메아리의 진동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개들의 무리가 진동한다.
멈춰있는 파리가 진동한다.
찢어진 비닐 껍질들이 진동한다.
쓰레기 산이 진동한다.
매립지가 진동한다.
굳어버린 땅이 진동한다.
죽은 풀들의 흔적이 진동한다.
세계의 테두리가 진동하며 겹쳐진다.
개들의 무리와 멈춰있는 파리가 겹쳐진다.
비닐 껍질들과 쓰레기 산이, 매립지가, 굳어버린 땅과 죽은 풀들의 흔적이 겹쳐진다.
검게 물든 나무의 잎들이 겹쳐진다.
테두리들이 겹쳐지며, 세계가 휘어지기 시작한다.
수레가 휘어지고, 매립지가 휘어지고, 개들의 무리가, 파리가, 쥐들이 휘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중심을 잃는다.
수레가 무너진다.
수레에서 썩은 흙이 쏟아져 내린다.
썩은 흙 속의 검은 돌멩이 속의 검은 가루 속의 검은 알갱이 속의 검은 영혼이 세계 밖으로 튀 어나온다.
검은 영혼들이 서로 부딪힌다.
검은 영혼들이 휘어지기 시작한다.
휘어진 검은 영혼들이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검은 영혼이 메아리의 진동과 부딪힌다.
끊임없이 고통의 화석들이 복제된다.
그리고 그때 개들 무리 중 한 마리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나에게 다가온다.
개들 무리 중 한 마리가 내 앞에서 입에 문 것을 뱉는다.
그것은 원기둥 모양의 양철통이다.
양철통 안에는 절인 참치가 들어있다.
개들 무리 중 한 마리의 두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개의 두 눈동자가 겹쳐진다.
나는 양철통을 들어 절인 참치를 입에 털어 넣는다.
곧 구역질이 밀려들고, 나는 휘어진 쓰레기 더미 위에 플라스틱 가루들을 토해낸다.
수레 안에서 죽은 나무가 노인의 뼈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검은 뼈의 무성한 가지들이 휘어지며 수레를 감싼다.
검은 뼈의 가지들이 나의 몸을 감싸며 자라난다.
검은 뼈의 가지들에서 빨간색 새순이 돋아난다.
새순에서 소의 피가 흐른다.
우리는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달리기 시작한다.
가로막힌 벽
벽
벽을 지나,
높은 건물들
더 높은 건물들
더 높은 건물들을 지나,
쓰레기 산
쓰레기 집
매립지를 지나, 끝내 대체되지 못하는 마네킹들의
멍!
폐공장을 지나, 죽음이 기다리는 소들이 있는
음마아
아아아
계류장을 지나, 팽창하기 시작하는 길 불빛 콘크리트를 지나, 동굴의 출구였던 터널의 입구에 도착한다.
그리고 우리가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터널의 입구는 점점 좁아지고 터널의 입구는 점점 좁아지고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터널의 출구인지 동굴의 입구인지 모를 하얀색의 점 하얀색의 점 하얀색의 점 멀어진다.
점점
동굴이었던 터널이 좁아진다.
메아리의 역사가 수축한다.
터널의 벽이 터널의 벽이 우리를 향해 밀려든다.
쪼그라든다.
나는 몸을 숙이고 터널의 벽에서 떨어지는 메아리의 타액을 맞는다.
아
흐으
허어엉
하어
호오우
우우우히이이이
하아아이
우우
입을 크게 벌린다.
입속으로 메아리의 방울들이 들어온다.
터널이 수레의 높이만큼 수축한다.
사방에서 쥐들이 튀어나온다.
쥐들이 나무의 빨간색 새순을 갉아먹고 소의 피를 마신다.
손톱과 발톱을 뜯어먹는다.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린다.
나머지 바퀴 하나가 부서져 떨어진다.
나는 등에 수레를 업는다.
검은 뼈의 가지들이 내 몸의 모든 구멍 속으로 들어온다.
수레가 등에 붙기 시작한다.
쥐들이 노인의 검은 뼈를 부러뜨린다.
하얀색의 점이 점점 커진다.
이윽고 우리가 철문에 부딪힌다.
철문이 부서지며 쥐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가 하얀색의 점 밖으로 튀어나온다.
10. 도시에서
소의 피 냄새가 나는 수레가 등에 붙어버린 검은 뼈의 가지들이 몸에서 자라나는 하수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꼬마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에 멈춘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그것을 본다.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본다.
우리는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 속에서 순식간에 그것이 된다.
인간들이 길고 얇은 손가락으로 코를 막는다.
그것에 대해 무어라 말한다.
눈동자들 중 하나가 천천히 그것에게 다가온다.
그것에게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천천히 무어라 말한다.
그것은 알아듣지 못한다.
눈동자들이 서서히 그것을 둘러싼다.
그것은 점점 더 그것이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달릴 곳을 찾지 못한다.
사방이 가로막혀 있다.
그것 주변으로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가로막혀 있고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 주변으로 더 높은 건물들이 가로막혀 있고 더 높은 건물들 주변으로 가로막힌 벽이 가로막혀 있다.
동굴
폭포
계곡
산비탈
임도
묘지산
계단식 논이
가로막혀 있다.
아니
어쩌면 그곳은 이미 사라졌다.
그곳은 모두 굳은 땅이 되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그것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수많은 화학 약품의 냄새 알갱이가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것의 콧속으로, 그것의 눈 속으로, 그것의 입속으로, 그것의 귓속으로, 그것의 썩은 흙 속으로 들어간다.
노인의 검은 뼈가 자라나 그것의 온몸을 휘감는다.
그것의 몸에서 검은 뼈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노인의 검은 뼈가 그것의 검은 뼈를 휘감고 그것의 검은 뼈가 노인의 검은 뼈를 휘감는다.
그리고 거대한 검은 뼈의 나무가 만들어진다.
가로막힌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뒷걸음질친다.
잠시 동안 가로막힌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에 틈새가 생긴다.
틈새 사이로 거대한 검은 뼈의 나무가 된 그것은 가로막힌 더 높은 건물의 쇼윈도를 본다.
쇼윈도에는 인간이 전시되어 있다.
계단식 논에 무너진 마네킹과 똑같은 몸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은 굴곡진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색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것이 인간을 본다.
인간이 뒤집어쓴 검은색 스타킹이 찢어지기 시작한다.
찢어진 스타킹 사이로 인간이 그것을 본다.
인간과 그것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인간은 한 쪽 팔을 곧게 쳐들고 검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고 있다.
그것의 충혈된 눈동자가 인간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손가락의 끝에는 네 개의 바퀴가 달린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컨테이너 박스의 두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컨테이너 박스의 안은 압축된 폐기물들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검은 뼈의 나무가 된 그것은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검은 뼈의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휘어진다.
순식간에 가로막힌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그것을 중심으로 길을 만든다.
그것에게 길을 내어준다.
거대한 검은 뼈의 나무가 된 그것의 길이 만들어지고, 태양이 모든 소리들을 먹어 삼킨다.
거대한 검은 뼈의 나무가 된 그것은 망설임 없이 압축된 폐기물들 사이에 올라탄다.
그리고 곧 네 개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가로막힌 수많은 인간의 눈동자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가로막힌 더 높은 건물의 쇼윈도 속 인간의 눈동자가 가로막힌 벽이 도시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도시의 시간이 느려지며 이윽고 하나의 점으로 뭉쳐진다.
11. 구르는 네 개의 바퀴를 가진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굳어버린 땅
평평한 길
아직 마르지 않은 콘크리트와 곧 세워질 가로막힌 벽 죽음이 기다리는 갓 태어난 소들과 전선 위에 둥지를 튼 새들 태어나자마자 도로에 뛰어드는 고라니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자라는 잡초들 폐공장 안 사람을 물어 죽인 개들과 밑둥이 잘린 나무에 피어난 버섯들 도시에 기생하는 바퀴벌레들 쓰레기 산의 배부른 파리와 언젠가 인간이 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손톱과 발톱을 뜯어먹는 쥐들 신발 자국의 문양이 생긴 지렁이 음식물찌꺼기를 쪼아 먹는 비둘기 죽음을 예고하는 나비와 번식하는 곤충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벤 고양이 흔적을 지우는 멧돼지 부서진 동굴의 잔해 돌멩이 하나의 기억 연기에 가려진 구름의 모양 화학약품의 냄새 알갱이가 섞여서 내리는 비 식지 않는 태양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우리 앞으로 지나간다.
메아리의 진동이 내 몸속에서 튀어나온다.
검은 영혼이 내 몸속에서 튀어나온다.
메아리의 진동과 검은 영혼이 수레의 썩은 흙 속으로 들어간다.
썩은 흙이 진동하고 나무가 다시 자라난다.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다.
마침내 나는 그 세계에 속한다.
12. 항구에서
우리는 수많은 빛이 화살처럼 쏘아대는 항구에 도착한다.
항구는 바다 아래에 사는 존재들의 고통이 가득한 장소다.
우리는 잠시 여기에서 머무르며,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나의 고통을 멎게 만들었다.
내가 마침내 그 세계에 속하는 순간 나는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짐작했다.
아니, 그것은 확신이다.
우리는 또다른 숙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내가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마네킹이 예언한대로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힌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그것에게 도착하기 위해 항구에서 배를 기다린다.
이 항구에는 많은 인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인간들은 도시의 인간들과는 달라서,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끼리 모여 있고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인간들끼리 대화를 하고 싸운다.
그들은 어딘가로 쫓겨나거나, 어딘가에서 탈출하는 인간들이다.
몇 번의 밤과 낮이 지나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폐기물로 분류되어 배에 올라탔다.
압축된 폐기물과 압축될 수 없는 폐기물로 분류된 우리와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그것들과 서로 다른 냄새 서로 다른 몸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진 그것들이 뒤엉키고 섞여서 배에 뭉쳐있다.
그리고 우리가 탄 배 아래에는 검은 물을 가진 바다 그 아래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의 역사를 감내한 존재들이 떠다니고 있다.
우리가 복제를 시작한다.
13. 검은 물을 가진 바다 위에서
익히
학 우욱
큭 허엇 힉 쿠욱 히 캉
킹 칵 힝 큭 익 크으
커억 잉 캑 으으
흐윽 항 컥 하아 하 커어흑
헉 응 캉 탓아 키익
히잇 케엑 음 가악 악
하아 쿡 객 하
익 숏 핵 학 힉 흐으
우우 헉 헉 옿 하악 힉 크윽큭 턱
하 하아 하악 후우 후 훅 칵
흐 흑 흐으 하 허억 헣 아악
흑 흑 학 흐 후 후우
흑 흐윽 힉 쿠욱 으윽 카아 흐윽
흐으 윽 컹 컹 쿠욱 쿠욱 히
윽 컥 칵 커억 컥 하
흣 키익 킥 학 앟 후국
흑으 하악 항 으응 흑 히익 응 흑 흑
흐윽 흑 이익 악 익 흐윽 흑
흐으 흑 흑 익 육옥 힉 히익 흑 흑
악 악 아악 헉 앙 아아 아학 학
아아 이 히익 학 훅
아악 학 학 아 으윽 학 학 학
굑 으흐으 흑흑 흑 힉 학 악 하윽 흐으 억
극 각 욱 흐극 각 각 학 잏 핳
이이 익 앙 흐윽 하악 학 학 악 악 오 우욱
아 익이 후욱 힉 힛 힉 하악 이 흐윽
이익 악 혹 아각 각 가긱 흑 악
힉 히익 하악 학 힛 하 히이 훙
히이 학 후우 옿 호오 후 학
학 하아후욱 욱 항 학 옿 히 이익 익
우우 앙 힉 학호옹 악 아아 아악 악
이익 하악 학 학 악 악 항
우욱 욱 악 흐윽 흑 히익 익
히익 힉 힉 핵 학 흑 흑
호옷 홋 홋 홋
히긱 학 학
폐기물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다른 폐기물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그것들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다른 그것들이 실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우리가 다른 배에 탄다.
다른 폐기물로 분류된다.
누군가 압축을 시도한다.
우리가 다른 배에 올라탄다.
그것들로 분류된다.
그것들과 함께 배에서 내린다.
다른 배에 올라탄다.
폐기물로 분류된다.
다른 폐기물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다른 폐기물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그것들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우리가 그것들로 분류된다.
그것들과 함께 배에서 내린다.
다른 배에 올라탄다.
그것들로 분류된다.
다른 그것들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다른 그것들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우리가 폐기물로 분류된다.
다른 배에 올라탄다.
폐기물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폐기물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다른 폐기물이 실린다.
배가 무거워진다.
다른 폐기물이 내린다.
배가 가벼워진다.
우리가 내린다.
14. 얼음 섬에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거대하고 유일한 얼음 섬이다.
남아있던 크고 작은 얼음 섬들은 모두 검은 물을 가진 바다가 되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곳은 이제 거대하고 유일한 얼음 섬이 되었다.
이 거대하고 유일한 얼음 섬에는 작은 얼음산이 있다.
거대하고 유일한 얼음 섬의 작은 얼음산은 원래 거대한 얼음산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검은 물을 가진 바다 위에서 여행하는 동안, 그것은 만년만에 처음으로 녹기 시 작했다.
우리가 얼음산을 올라간다.
나의 몸은 구십 도로 꺾여 있고 내 등에는 커다란 수레가 붙어 있다.
수레 안의 나무는 거대하고 웅장하게 자라나 있다.
노인의 검은 뼈와 나뭇가지 소의 피와 도시의 기억 메아리의 진동과 검은 영혼을 담고 있다.
그것은 멀리서 보면 거꾸로 된 거대한 나무 산처럼 보이기도 하다.
나무 산 안에서 온갖 미생물들이 자생한다.
수많은 곤충이 모여든다.
동물들의 영혼이 동굴의 문양을 만든다.
거대하고 유일한 얼음 섬의 만년만에 처음으로 녹기 시작한 작은 얼음 섬을 올라가고 있는 거꾸로 된 거대한 나무 산.
얼음이 녹는 동안 나뭇가지의 뿌리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오래된 세계가 파괴하는 동안 우리는 고통을 복제하고 뒤집힌 새로운 세계가 생성된다.
소멸하는 세계와 생성하는 세계가 만난다.
죽음과 탄생의 시간이 겹쳐진다.
15. 작은 얼음산에서
우리가 작은 얼음산을 올라가는 동안 얼음산의 꼭대기는 녹아내렸다.
작은 얼음산은 이제 넓고 평평한 얼음산이 되었다.
우리가 넓고 평평한 얼음산의 한 가운데에 선다.
우리는 넓고 평평한 얼음산의 한 가운데에서 거꾸로 된 나무 산으로 얼음산의 꼭대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우리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를.
마치 우리가 얼음산의 꼭대기를 만들자마자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그 누군가는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것은 한 소녀이다.
임도에서 노인을 기다리고 있던 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소녀이다.
소녀가 말한다.
소녀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소녀
그것은 바로 고통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야.
소녀
나는 새, 파리, 나비, 애벌레, 유충, 개미, 지렁이, 고라니, 들개, 두더지, 다람쥐, 멧돼 지, 개구리, 물고기같와 수이 없이많도 종은 류곤의 충동과 물고의 통복을 제있수 할 어.
소녀
그리고 나는 잡초, 들풀, 꽃, 버섯, 이끼, 갈대, 넝쿨, 나무와 같이 수없이도 많은 종류의 식물의 고통도 복제할 수 있어.
소녀
그들이 고통을 느낄 때 나는 두개골이 열리고, 뼈가 으깨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호흡이 멎는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
소녀
눈알이 튀어나오고, 손톱이 빠지고, 근육이 끊어지고, 온몸의 털이 뽑힐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
소녀
장기가 끊어지고, 위액이 역류하고, 목에서는 피가, 귀에서는 진물이, 코에서는 고름이 터져 나올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
소녀
물론 이 능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소녀
이 특별한 능력은 때때로 아주 가끔, 때때로 혹은 많이, 때때로 알 수 없는 정도로 나 에게 찾아와.
소녀
나는 그런 고통은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이 특별한 능력을 없애는 방법을 찾고 있어.
소녀
그 방법을 알고 있니?
소녀와 우리는 조용해진다.
소녀와 우리의 눈이 만난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얼음이 녹는다.
수레 안의 뒤집힌 세계가 꿈틀거린다.
우리
수레를 떼어낼 수 있게 도와줘.
소녀가 등에 붙은 수레를 잡아당긴다.
우리가 소리를 지른다.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수레를 잡아당기고,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부서진다.
수레가 아니라, 우리의 몸이 부서진다.
구십 도로 꺾여 있던 우리의 몸이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고, 더 펴지더니 다시 반대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하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더 꺾이고, 이내 완전히 꺾여 접혀버리더니 그대로 부서져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우리의 부서진 몸이 뒤집힌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녀의 눈이 뒤집힌 세계 속에 속한 우리를 본다.
우리의 눈이 뒤집힌 세계 속에 속한 소녀를 본다.
그렇게 한참을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된 우리의 눈이 만난다.
이윽고 밤이 찾아온다.
뒤집힌 세계 속에서 풀벌레들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고라니의 영혼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녹고 있는 얼음 섬 위로 소녀가 천천히 수레를 잡아당기기 시작한다.